좋은 책은 왜
다시 읽어야 할까?
C. S. 루이스 『책 읽는 삶』에서 시작한
다시 읽는다는 것에 관한 질문.
읽지 않은 책은 계속 쌓인다. 새 책은 매주 나오고, 읽고 싶은 목록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한 권을 다 읽으면 또 다른 책이 기다린다.
그런 우리에게 C. S. 루이스는 조금 이상한 말을 남겼다. 새로운 책을 더 많이 읽으라는 말이 아니다. 이미 읽은 좋은 책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이야기다.
“모든 좋은 책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야 해.”
C. S. Lewis → Arthur Greeves에게 보낸 편지
1933년 8월 17일
처음에는 조금 비효율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아직 만나지 못한 책도 이렇게 많은데, 왜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책으로 돌아가야 할까.
이 질문을 몇 초만 쳐다보고 있어보자. 그러면 책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책은 그대로인데,
읽는 사람도 그대로일까.
열여덟 살에 읽었던 소설을 서른여덟 살에 다시 펼친다고 생각해 본다. 문장은 바뀌지 않았다. 등장인물도, 사건도, 마지막 페이지도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책 밖에 있다.
책은 그대로지만
읽는 사람은 그대로 있지 않는다.
사랑을 알기 전에 읽었던 사랑 이야기와 사랑해 본 뒤에 읽는 사랑 이야기는 다르다. 누군가를 잃은 뒤에는 예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문장이, 잊으려 해도 계속 떠올랐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부모가 된 뒤, 실패한 뒤, 일을 시작한 뒤,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 삶이 한 번 움직이고 나면 같은 문장도 다른 곳에 닿는다.
다시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책 앞에 앉혀 보는 일이다.
루이스에게 독서는
‘나’를 넓히는 일
루이스에게 독서는 정보를 더 많이 소유하는 일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잠시 다른 사람의 눈을 빌려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경험의 끝에서 그는 뜻밖에도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돌아온다고 썼다.
“독서를 통해서도 나는
나를 초월하되
이때처럼 나다운 때는 없다.”
C. S. Lewis · 『오독: 문학 비평의 실험』
An Experiment in Criticism
이 문장을 재독이라는 관점에서 읽으면 묘한 생각 하나가 남는다. 좋은 책을 다시 펼칠 때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것은 작가의 생각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사이 달라져 버린 자기 자신도 함께 만난다.
읽고, 쓰고,
다시 읽던 사람
루이스의 삶에는 늘 책이 있었다. 그는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의 Magdalen College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오랜 시간 문학을 읽고 쓰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보존되어 있는 그의 개인 장서에는 밑줄과 주석, 여백의 흔적이 남은 책들이 있다. 책은 루이스에게 멀리서 감상하는 물건이라기보다 읽고, 표시하고, 다시 돌아가는 장소에 가까웠다.
그런 독자가 “좋은 책은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 문장은 독서에 관한 멋진 격언보다 한 사람의 오래된 습관처럼 들린다.
어쩌면 좋은 책의 기준은
‘다 읽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책을 자주 완료의 언어로 말한다.
읽었다. 아직 읽지 않았다.
이번 달에는 몇 권 읽었다.
올해는 몇 권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 남는 책에는 ‘완료’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는데 생각은 끝나지 않는 책. 몇 년이 지난 뒤에도 한 장면이 불쑥 떠오르는 책.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문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지는 책. 그런 책.
좋은 책은 답을 많이 주는 책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새로운 질문을 남기는 책인지 모른다.
그래서 재독은 뒤로 돌아가는 독서가 아니다. 같은 장소를 다른 나이의 내가 다시 통과해 보는 일에 가깝다.
첫 번째 독서에서 작가를 읽었다면, 두 번째 독서에서는 그 사이 변한 나까지 읽게 된다.
다시 읽고 싶은 책에는
작은 날짜를 남겨두자.
오늘 마음에 걸린 문장 하나와 읽은 날짜 하나. 몇 년 뒤 같은 페이지를 펼쳤을 때 책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책은 아마 그대로일 테니까. 대신 그 문장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알 수 있다.
01 읽은 날짜
02 오늘 가장 오래 남은 문장
03 지금의 내가 이 책에 묻고 싶은 질문 하나
몇 년 뒤 같은 책을 펼쳤을 때,
그 세 줄은 책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나에 대한 기록이 된다.
루이스책방의 첫 번째 질문은 여기서 시작한다.
당신이 10년 뒤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C. S. 루이스
『책 읽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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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Lewis Foundation · The Life of C. S. Lewis ↗
Marion E. Wade Center, Wheaton College · C. S. Lewis Personal Library ↗
C. S. Lewis · An Experiment in Cri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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